새집도 안심 못 하는 책장벌레, 습도가 정답

이사를 마치고 들이찬 이사 트렁크를 몰래 따라온 녀석이 있었습니다. 집무 의욕에 잔뜩 부풀어 있던 제 서재는 새 식구도 아닌 그 ‘작은 녀석’ 덕분에 이내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크기는 아니어서 금세 잊힐 법도 한데, 책을 여닫기만 하면 나뭇잎처럼 납작한 녀석이 슬그머니 지나가더라고요. 처음 한두 번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며 서가 곳곳에서 그 모습이 보이자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오늘부로 네가 그 습한 눙구리를 벗어나는 날까지 끝까지 간다’는 각오로 퇴치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차례 시행착오와 검색으로 밝혀낸 기록을 풀어봅니다.

낯선 손님의 정체를 알다

책장과 벽지 사이에서 발견되는 1mm 안팎의 작은 벌레는 보면 볼수록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오래된 두꺼운 전공서적 사이에도 서식한다고 하기에 망설임 없이 검색을 해보니 ‘먼지다듬이’와 ‘좀벌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 다 ‘책장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책과 인연이 깊었죠.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니 우리 집에는 권연벌레로 보이는 녀석까지 목격된다는 점이 뜻밖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생김새를 한 녀석들이 한꺼푸에 발견되는 모습을 보며 이건 정말 책장벌레 문제가 맞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책과 종이가 만들어내는 먼지 냄새가 그냥 좋아서 시작한 작은 서재가 이렇게 클 줄 정말 몰랐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은 도서관을 만든다는 설렘에 인테리어 기간도 거뜬히 이겨냈고, 책꽂이를 붙박이로 만들었습니다. 이사 후 첫 장마를 겪으며 그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다고 생각했는지 새삼 반성이 됩니다. 새로 고른 목재 가구의 냄새도 채 가시기 전에, 서가 위쪽 전구 갓 속에서 떼지어진 벌레들을 보는 순간 나만의 즐거운 피난처가 낡은 다락방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저처럼 당황하실 분들을 위해, 제가 관찰한 세 벌레의 차이점을 큰 종이에 그려 가며 겨우 정리해 보았습니다. 벌써 머릿속이 어지러우시다면 아래 표를 쭉 훑어보시길 바랍니다.

구분크기특징피해
먼지다듬이 0.5~1.2mm 곰팡이를 주식으로 하며, 포름벌레로 부르기도 한다. 사람에게 직접 해는 없으나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음
좀벌레 1~2cm 몸이 납작하고 은빛 비늘이 있으며 뒤에 긴 꼬리털이 특징 벽지, 책 표지, 전분 성분의 접착제를 갉아먹는다
권연벌레 2~3mm 몸이 통통하며 주변에 비슷한 무늬가 많고 잘 날아다닌다 습기가 적은 곳에서는 가만히 있어 발견이 어렵지만, 천천히 갉아 먹음

습기만 답하다

책장벌레 퇴치를 위해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백과사전을 펼치는 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답은 명확했습니다. 세 벌레 모두가 고르게 좋아하는 먹이가 다름을 안내하는 대신, 공통적으로 습할 때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겨우내 냉골처럼 차가웠던 콘크리트 벽면 위에 습기가 배어나 보온을 위해 나무 마루를 깐다 말을 들은 옛 기억이 스치자,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그날부터 아들의 오래된 선풍기와 제습기를 모두 독수리 표본처럼 전투 배치했습니다. 퇴근하고 매일 밤 3시간 동안 침실 문을 닫은 채 살구색 창문을 하얗게 만들 정도로 돌려도 습도 50% 아래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로 습기라는 게 부지불식간에 온 집안에 퍼져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책장 제일 안쪽에 놓인 신문 구역과 현관 신발장에는 시니컬하게 도료를 발라가며 방수 공사를 할 정도였죠.

환절기 장마철 비가 오래 내리던 어느 날 새벽, 저는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날씨가 괜시리 마음에 걸려 를 눌러 보며 이제는 날씨 탓만 할 수는 없구나 싶었습니다. 날씨가 주는 블루스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던 곰팡이 포자가 놀라우리만치 순식간에 실내를 점령하는 것을 느꼈으니까요. 창문을 살며시 조금 열어두고 천천히 습도가 오르는 모습을 보니 책장벌레들이 편치 않은 동지를 찾아 책 위를 조금 다녔구나 싶었습니다.

책장벌레

시행착오 그리고 첫 번째 돌파구

습도 조절과 함께 생각난 것이 의외로 쉽게 보급이 가능한 ‘냉동 소독’이었습니다. 귀중한 고서인 양 아무데나 굴리기 아까운 책은 지퍼백에 밀봉해 냉동실에 48시간 넣어두면 서늘한 기운에 취약한 유충과 알까지 모두 사라진다고 합니다. 어느 날 김치냉장고에 소분해 둔 곡식 가루가 조금 묻어 지저분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문득 이것이 괜히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꺼낼 때는 키치타월을 깔고 세워두고 서늘한 곳에서 천천히 온도를 맞추어, 결로가 지는 것을 최소화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벌레가 관찰되자 장롱 속에서 나오지도 않던 구형 수납박스와 리빙박스를 꺼냈습니다. 종이 박스 대신 단단한 플라스틱 수납함을 사 모으기 시작했고, 골판지 끼리 쌓아두면 그 사이가 집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망설임 없이 탈출했습니다. 이사할 때 못 보던 방충 시트라도 다행이라는 심정으로, 비슷한 크기로 접어서 각 모서리에 사이사이 촘촘히 끼워 넣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충 성분보다 더 결정적인 효과를 본 것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환경이라는 거대한 벽

그것은 다름 아닌 ‘건조한 겨자씨만한 실내에서 키우는 화초’ 덕분이었습니다. 화초를 키우면서 물을 주고 나면 자연스럽게 바닥과 벽지에 고였을 주변부의 습한 미기후가 생겼던 것인데, 겨울이다 보니 이것저것 눌러 담다 보니 주방과 세탁실 그리고 화장실까지 습도가 고르게 분포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지점에 유독 벌레가 목격되는지를 보니 비온 뒤 뒤꿈치처럼 발이 절로 끌리는 그곳이 정확히 집안의 북쪽이었고, 그 주위로 벽지를 교체했던 자리가 커다랗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집의 해가 들지 않는 벽면에 설치된 붙박이 책장은 결코 가구가 아니라 ‘습기의 저장고’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기대기 보다는, 잠들기 전에 골판지에 조금씩 남기 위해 접어낸 박스조각은 모두 재활용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삶은 고단했지만 새 지혜를 얻는 기분으로 하루에 한 번씩 캐비닛을 열어주고, 장마철에는 서가 위에 소금 단지를 얹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단순한 행동이 이후 책장벌레 근절의 시그니처가 될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책과 잡지뿐 아니라 오래 두고 보려 만든 신문 스크랩북 두어 권은 눈물을 머금고 서서히 정리했습니다.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지나며 작은 벌레조차 온전한 서사를 가진 생명체라는 마음에 소중한 동선은 피해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의 불편함보다 반려인의 완벽한 편안함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침내 저희 집에 맞는 황금률을 찾아내자 주방과 베란다뿐 아니라 오랫동안 만지지 않은 서류 위, 부엌 서랍 등 곳곳에서 조용히 벌어지던 파수꾼 역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일요일이 왔다

이제는 밤에만 좀 지나가면 문득 침대에 누워 있는 순간에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신경이 쓰이던 때가 있었는데 그쯤에서 숨죽이며 웃게 되더라고요. 새 집에서 처음으로 기나긴 장맛비가 걷혔던 날, 저는 선선한 바람을 쐬기 위해 거실 발코니 창문을 열어 젖은 5센티미터가 되어버린 벽과의 거리를 실감했습니다. 미세하게 차이를 두고자 세게 밀어놨던 소파를 벽에 바싹 붙여 두어도, 아무리 책을 꽂아도 더는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습도와 온도와 자정이 넘은 조명, 이 세 가지만 완벽해지면 이사 간 작은 벌레는 당당한 야생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끔은 환절기가 되면 옷장 구석이 자꾸만 걸리긴 합니다. 벌써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문득 기억나는 것은, 우리 집이 지어지기 전에 축축한 바람이 불던, 그러다가 창틀 나무를 통해 습기가 새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입니다. 저는 해가 잘 들지 않고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듯한 구석보다 환기와 제습이라는 커다란 통찰을 얻었습니다. 어떤 화려한 살충제보다 말입니다.

남은 마무리로, 실내 습도를 50% 아래로 유지해 주는 것이 몸에 들이 뱄는지, 저는 큰 종이에 “책장벌레 없는 주의보”라고 쓰고 연구소 문을 닫는 기분으로 일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만났던 그 작은 벌점이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당황하지 않을 궁리를 하며, 저는 사랑하는 소설을 마저 읽기 위해 조명 아래로 걸음을 옮겨 봅니다. 그동안 깨끗해진 책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마도 주말마다 먼지가 나지 않도록 붙든 청소포가 아닐까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책에 사는 벌레는 사람을 물거나 해를 입히나요?
A. 대부분이 사람에게 직접 해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몸에 붙은 미세한 비늘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위생상 잘 닦고 관리하셔야 해요. 크게 당황하지 말고 바로 습도부터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Q. 목욕 큰 상자나 입이 벌어진 플라스틱 통에 책을 보관해도 되나요?
A. 뚜껑이 완전히 밀폐되는 리빙박스를 추천해요. 공기가 통하는 등받이에 새것 보관함을 이용할 때는 방습제와 밀봉팩을 꼭 함께 써 주시는 게 좋아요. 습도와 접촉 면을 확실히 차단하면 벌레가 크게 늘지 않아요.

Q. 습도는 꼭 측정해야 하나요?
A. 체감으로 대충 감을 잡기 쉽지만 책과 가구를 지키려면 실측이 중요해요. 앞으로 여름 내내 쾌적하고 꼼꼼한 표시가 있는 온습도계 하나쯤 들여놓으시면 실내가 나빠지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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