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 39주기 민주주의의 약속

1987년 7월 5일, 스무 살 청년이 남긴 민주주의 유산

1987년 7월 5일 새벽 2시 5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생 이한열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스무 살. 27일 전인 6월 9일, 신촌 연세대 정문 앞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고 쓰러진 그가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다.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을 폭발시켰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39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가 외쳤던 ‘민주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있을까? 오늘은 이한열 열사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며, 그가 꿈꾼 세상이 아직도 진행 중인 이유를 돌아본다.

27일의 사투, 그리고 160만 명의 분노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5분. 연세대 정문 앞 시위 현장에서 전경이 발사한 SY-44 최루탄이 이한열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최루탄은 원래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에서 터져야 하지만, 이날은 안전 각도를 무시하고 사람을 향해 낮게 발사됐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한열을 같은 학교 학생 이종창이 부축했고, 로이터 통신 기자가 그 장면을 찍었다.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한 사진은 전국민의 가슴을 찢었다. 이한열은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뇌손상과 심폐기능 정지로 27일간 사투를 벌였지만, 단 한 번도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그가 쓰러지기 직전 남긴 말은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였다. 자신의 생사보다 다음 날 시위 일정을 걱정한 평범한 청년의 말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됐다. 6월 29일, 노태우 여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 선언’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한열은 그날을 보지 못했다. 1987년 7월 5일 새벽, 그는 스무 살의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7월 9일, 연세대에서 신촌 로터리, 서울시청, 광화문을 거쳐 광주 망월동 5·18 묘역까지 이어진 운구 행렬에는 서울에서 100만 명, 광주에서 50만 명 등 전국적으로 16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그날의 함성은 단순한 애도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압도적인 요구였다.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추모제 모습, 촛불과 국화꽃이 놓여 있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 이한열을 기억하는 법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6월 9일 제38주기 추모제(올해 39주기)에서 “나라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다시 맞은 6월이기에 감회가 깊다”며 “이한열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민주국민장 당시 상여 맨 앞에서 대형 만장을 들었던 청년이었다. 지금은 국회의장 자리에서 다시 같은 자리에서 “국민의 삶으로 입증되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아직도 남은 법적 숙제: 민주유공자 예우

이한열 열사는 4·19와 5·18 관련자처럼 ‘민주유공자’로 공식 인정받지 못했다. 6월 항쟁 희생자들을 위한 ‘민주유공자법’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38주기 추모식에서 우원식 의장은 “민주유공자 예우에 국회가 책임지겠다”고 다짐했지만, 39주기가 지난 지금도 법은 그대로다. 이숙례 여사(이한열 모친)는 여전히 “아들이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게 안타깝다”고 말한다. 6월 항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2026년, 우리가 이한열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지난 2024~2025년, 한국 사회는 광화문 집회, 탄핵 정국, 여야 대립 속에서 민주주의 위기를 다시 경험했다. 우원식 의장의 발언처럼 “국민의 삶으로 입증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위협하는 도구로 전락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한열이 쓰러진 광장은 이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는 무기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는 약자의 가장 강한 무기여야 한다는 그의 유언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표로 보는 이한열 열사와 6월 항쟁의 결정적 순간

날짜사건의의
1987.6.9연세대 정문 앞, 최루탄 피격이한열 쓰러짐, 전국 확산의 도화선
1987.6.29노태우 6·29 선언직선제 개헌 수용
1987.7.5이한열 사망 (27일 만)민주국민장, 160만 명 배웅
1987.10.29개헌안 국회 통과대통령 직선제 확정
2026.7.539주기, 민주유공자법 미통과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민주주의

위의 표에서 보듯, 이한열의 희생은 대한민국 헌정사를 바꾸는 결정적 고리였다. 하지만 39년이 지난 지금, 법적 예우조차 완료되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5·18과 4·19는 법으로 기념되고 예우받는 반면, 6월 항쟁의 희생자는 여전히 ‘유공자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지연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세대와 이념을 둘러싼 정치적 줄다리기의 결과다.

광장의 촛불에서 국회의 법률까지, 아직 가야 할 길

2026년 7월 5일 오늘, 이한열 열사 39주기를 맞아 연세대 이한열동산에서는 추모제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촛불을 켜고 묵념했다. 유가족, 동문, 시민들은 그가 남긴 말을 되새겼다. “정치는 약자의 가장 강한 무기여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 사회는 또 한 번의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었다. 그때 광장에 나선 젊은이들은 1987년의 이한열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은, 그때의 외침이 현재의 체제로 굳어졌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선거 제도 개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매일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치, 약자에게 힘이 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이한열을 다시 살려내는 길, 우리의 역할

이한열 열사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그의 죽음은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그리고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줬다. 39년이 흘렀지만, 그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가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국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가 남긴 마지막 말 “내일 시청에 가야 하는데…”는 오늘 우리가 광장에, 투표소에, 국회 앞에 가야 하는 이유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민주유공자법을 통과시켜 이한열과 박종철, 그리고 6월 항쟁의 모든 희생자를 법적으로 예우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가 다시 국민의 삶을 억압하지 않도록 감시하고 참여하는 시민의식을 유지하는 것이다. 셋째,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잊지 않도록 기억하고 전달하는 일이다. 연세대 신촌캠퍼스 이한열기념관에 전시된 그의 옷과 신발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건다. “너희는 내가 꿈꾼 세상을 만들고 있니?”

이한열과 박종철, 두 청년이 남긴 공통된 절규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경찰 고문으로 숨졌고, 이한열은 6월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두 사람은 모두 20대 청년이었고,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다. 우원식 의장은 두 열사를 모두 ‘민주유공자’로 예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가 이 기사를 읽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한열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가 쟁취한 직선제라는 권리를 오늘 행사하고 있는가?

오늘, 광장에 서야 하는 이유

39년 전 오늘, 이한열은 숨졌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살아 있다. 올해 6월 9일 추모제에는 이숙례 여사, 우상호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윤동섭 연세대 총장,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장, 김민결 추모기획단장 등이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우 의장은 다시 한 번 “민주유공자 예우에 국회가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은 말일 뿐, 행동이 따라야 한다. 우리는 오늘도 이한열의 희생을 기억하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FAQ

  • 이한열 열사가 민주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한 이유가 뭔가요?
    민주유공자법은 4·19와 5·18 관련자만 포함하고 있으며, 6월 항쟁 희생자를 포함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속 지연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견과 예산 문제가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2026년 39주기 추모제는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2026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이한열동산에서 열렸습니다. 매년 6월 9일과 7월 5일에 각각 추모제가 열립니다.
  • 이한열 열사의 유족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어머니 이숙례 여사는 여전히 민주유공자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매년 추모제에 참석합니다. 다른 유가족들은 개인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6월 항쟁과 이한열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은 전국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켜 6월 항쟁을 폭발시켰고, 결국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는 6월 항쟁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 민주유공자 예우가 되면 어떤 혜택이 있나요?
    국가로부터 유족 연금, 의료 지원, 교육 지원, 국립묘지 안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적으로 공식적인 예우와 기념사업이 가능해집니다.

Leave a Comment